세계 최고 기술력ㆍ한국 수출 견인차 '신발 산업'
중흥기엔 부산 제조업의 23% 차지할 정도로 '주목'
부산 신발 클러스터 1970~80년대 형성된 '기반'
국제 신발업계 "경쟁력 확보위해 부산 알아야"
미국, 스포츠신발 91억 달러어치 한국서 수입

한국 신발 산업은 약 100년의 역사를 지닌다. 현대적인 의미의 신발 산업은 1912년 ‘고무신’이 등장하며 시작된 셈이다. 부산은 한국 신발 산업의 중심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신발 제조업 사업체는 2019년 기준 386개다. 이 중 172개(44.6%)가 부산에 소재, 부산은 한국 신발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990년엔 부산에만 1123개의 신발 업체가 있었으며 부산지역 제조산업대비 23.6%의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부산의 신발 산업은 1950년대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국제상사, 진양, 태화, 삼화, 동양고무, 대양고무 등을 중심으로 가황공정 생산 체제가 갖춰졌고, 이는 냉연공정으로 바뀌며 스포츠화 생산과 수출의 핵심 기지가 되어갔다.

 

이후 해외 공장 이전 등으로 인한 ‘해외직접투자기’ 등에 들어서며 과거의 성장세에 비해서는 속도감이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부산에는 신발 소재·제조·부품업 등 다양한 기업들이 있다. 2000년대에는 개성공단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현재는 신소재나 스마트 공정 등을 활용한 산업 고도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100년 역사’ 부산 신발 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부산 신발을 모르면 ‘간첩’인 시기가 있었다. 미국에서 가죽·신발 공장 하면 ‘서울’이 아닌 ‘부산’을 먼저 추천하는 이야기도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이번 회와 다음 회에서는 부산 신발 산업이 널리 알려지고 성장했던 ‘과거’가 중심으로 다뤄진다.

약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신발산업은 부산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국내 신발산업은 1912년 인천에서 고무신이 첫 등장하며 현대적인 ‘산업’의 의미로 성장해왔다. 1933년에는 고무신의 인기로 전국에 73개 공장이 운영되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도 고무신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신문에 남겨질 정도였다. 부산도 1921년경 선만고무 등의 회사가 설립되고 고무신 제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바다를 끼고 있어 고무신을 만드는 원료 확보가 타 지역에 비해서 용이했던 부산엔 1949년경 경남도에 등록된 신발공장이 70여개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대표적인 부산 신발 제조업체들이 부산진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여러 장소에 자리를 잡게 된다. 부산진구 부암동에 진양고무, 당감동 동양고무, 가야동 태화고무, 범천동 삼화고무, 전포동 대양고무·보생고무, 동구 범일동 국제상사 등이 대표적인 신발 공장이었다. 공장들이 설립되고는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범표·왕자표·동자표와 같은 브랜드를 가진 신발 제품이 생산됐다.

부산지역 신발 공장에서 1970년대에 신발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조되던 모습. (부산상공회의소·부산시 제공)
부산지역 신발 공장에서 1970년대에 신발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조되던 모습. (부산상공회의소·부산시 제공)

특히 부산에선 1970년대를 기점으로 ‘가황공정 포화’ 생산라인이 구축되며 수출이 본격화되어갔다. ‘가황’이라는 것은 황(Sulfur)을 첨가한다는 의미다. 고무에 황을 결합해 탄성을 높이는 것으로 ‘가류(유황의 ’유‘를 딴 용어)’라고도 불린다. 가황공정은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신발 갑피와 고무 밑창을 ‘원료 고무’를 붙여서 가마에 넣고 찌면 신발 바닥과 갑피가 고정되게 되는 공정이다.

우리가 현재 흔히 알고 있는 컨버스화가 이러한 공정을 거쳐서 생산되는 것이다. 부산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당시 이러한 공정에 대한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일본으로부터 기술자를 불러와 기술을 배우고 수준을 높이기도 했다. 실제로 태화고무는 일본의 월성고무와 삼화고무는 일본 고무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을 바탕으로 한 생산라인 구축은 부산 신발산업이 ‘수출’ 공신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당시 미국 시장의 컨버스나 케즈 같은 브랜드 그리고 유럽은 ‘스니커즈’의 생산을 늘리는 추세였고, 이 브랜드의 신발 생산을 담당하던 일본의 임금 상승 등의 상황이 존재했다. 미국 신발 시장은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생산라인과 기술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제상사, 진양, 태화, 삼화, 동양고무, 대양고무 등의 신발생산 대규모 투자로 생산공정을 구축하자 부산은 ‘세계 최대 규모 포화생산기지’가 되었다. 거기에 저임금, 납기를 맞추는 한국인들의 성실함, 기술력, 경제개발 계획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수출 전략 지원 제도 등의 요소들이 결합했다.

부산지역에 신발생산 클러스터가 형성되게 되자 국제적으로도 부산에 가면 신발 개발부터 생산까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알려지게 된다. 신발 부자재, 부품, 디자인 개발, 기계 등 신발과 관련된 정보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나는 ‘클러스터’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의 신발 기업들을 모르면, 신발 업계서 경쟁력 확보가 힘든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부산지역 신발 업체인 삼화고무에서 1980년대에 신발이 제조되던 모습. (동길산 시인·부산시 제공)
부산지역 신발 업체인 삼화고무에서 1980년대에 신발이 제조되던 모습. (동길산 시인·부산시 제공)

이후 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부산 신발산업은 냉연제품 생산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한 운동화 생산을 본격화하게 된다. 가황공정이 주를 이루던 가운데 새로운 ‘냉연공정’이 등장하자, 국제상사, 진양, 태화, 삼화, 동양고무, 대양고무 등의 경영인들이 냉연공정 생산시설을 확대해 나갔다.

냉연공정(Cold Press)이란 방법은 원료 고무를 갑피에 붙여 전체 신발에 열을 가하던 가황공정과는 달리 밑창을 가황시키고 이를 접착제를 이용해 갑피에 붙이는 방법이다. 이 공정은 이후 신발 밑창 모양을 찍어낼 수 있는 금형을 잘 디자인 하면, 복잡한 모양의 밑창도 제조할 수 있어 기능성을 가진 ‘스포츠화’에 알맞은 공정으로 발전해갔다.

특히 냉연공정의 경우, 가황된 고무를 갑피와 이어 붙이는 ‘접착제’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 접착제는 동성화학이 국산화해 생산 공정을 지원했으며, 극동기계·풍갑기계·다보·삼보 등의 기계업체에서는 냉연공정에 필요한 기기들을 개발했다.

이러한 틀을 갖추게 되자 부산 신발산업은 ‘나이키’를 중심으로 수출 확대의 기회를 또 한 번 맞이했다. 70년대 나이키는 조깅화와 농구화 등 스포츠에 필요한 고기능성 전문 제품으로 운동화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기존 일본과 미국에 ‘생산’ 외주를 주고 이를 수입해오던 나이키는, 일본의 니혼고무로부터 ‘삼화고무’를 소개받게 된다. 이후 삼화는 나이키 한국제조의 독점권을 갖게 되지만 급격한 수요 증대로 국내 다른 대형 신발기업들도 나이키 운동화 생산을 담당하게 된다.

나이키나 리복, 아디다스 등의 국제적인 스포츠 브랜드들이 기능성 스포츠화의 생산을 국내에 맡기자 국제상사, 삼화 등은 국내 10대 재벌그룹으로 위상이 오르기도 했다. 태광실업, 화승, 삼양통상, 대신교역 등도 세계 브랜드의 위탁생산(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주문자 상표 부착생산)을 담당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신발수출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급격한 성장을 시작한다. 1975년 미국은 한국에서 13억100만달러의 신발을 수입했다. 이는 미국 신발수입량의 10%의 비중을 차지한 수치다. 1885년에는 미국의 수입 규모가 더 늘어난다. 613억300만달러의 신발을 한국으로부터 수입했다. 19%의 비중이다. 1988년엔 미국 신발수입의 29%를 한국이 담당하게 된다. 이후 1991년 미국의 한국에서의 신발수입액은 91억1200만달러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부산 신발산업은 대만 신발업계의 성장과 해외투자에서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이후 오르는 임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게 된다. 부산 신발산업의 성장세가 ‘하락’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오히려 국내 신발 브랜드 사업이 본격화되는 계기도 되었다. 다음화에서는 이 부분에 초점을 두고 부산 신발 산업의 ‘과거’를 소개한다.

 

김윤지 기자 kimyunzee@busan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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