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비현실적 계획 전면 수정

재생에너지·원자력 믹스

왜곡 안 되도록 신경써야

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현안과 미래를 위한 화두가 부각되었다. 탈원전 이슈도 그중의 하나다. 윤 당선인은 '탈원전 백지화'를 표방하고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을 주요 공약의 하나로 내걸었다. 원자력계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나 이 공약을 실현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원자력은 에너지 믹스(Energy Mix)의 일원으로 사용된다. 전기를 공급하는 다양한 발전원 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모든 발전원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고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면 큰 변화나 위기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다양한 발전원을 최적으로 조합하여 에너지 믹스를 구성해야 한다. 최적 조합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다. 에너지 믹스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하되 세부 구성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에너지 믹스를 결정할 때 에너지 안보와 친환경성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이 강한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최적 에너지 믹스 구성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첫 목표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지난해 11월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우리나라 에너지의 약 93%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로 변환되는 에너지는 총에너지의 20% 정도이다. 그중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발전비중이 약 35%에 불과하여 비화석에너지는 전체 에너지의 7%에 불과하다. 화석에너지가 대거 사용되는 우리나라의 산업, 전환(발전), 수송, 건물 냉난방, 폐기물 부문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매년 약 7억톤에 달한다. 이런 현실에서 8년후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작년 5월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로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출범 5개월만에 뚝딱 만들어 발표했다. 이 시나리오는 탈원전을 전제로 재생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아직 개발중인 기술을 마치 실증된 기술로 간주하는 등 아주 비현실적인 계획으로 가득 차있다. 2050년 탄소중립은 그나마 아직 28년 남았으니 바로잡을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2030년의 40% 감축목표는 불과 8년후의 일로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 
 

이런 여건을 이해하고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윤 당선인의 공약을 바라보면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보인다. 우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부터 기술적 가능성, 일정 및 비용 등을 감안하여 전면 재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편향적이고 전문성이 부족한 탄소중립위원회부터 재구성 또는 보완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계획뿐만 아니라 에너지 분야의 헌법에 해당하는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도 탈원전을 전제로 수립되어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원자력이 친환경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녹색분류체계)' 최종안에 포함시켰지만 우리나라 환경부는 원자력을 배제하였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면 이들 상위 계획이 새로운 정책기조에 부합하게 수정되어야 하며 분류체계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향후 원자력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다시 정의하는 일이 시급하다. 전력원별 발전 비중을 크게 수정해야 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안전성이 확인되는 운영허가만료 원전의 계속운전은 필수적이다. 백지화된 신규원전 건설계획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원자력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공고히 자리 잡으려면 원자력계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반핵 진영에서 원전의 안전성과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제기하고 일부 국민도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의 위험성은 현재 기술로 관리가 가능한 위험, 즉,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상태로 보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잘 관리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기존 원전을 60~80년간 사용하며, 프랑스는 원전의 발전비중을 7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큰 어려움을 겪은 일본조차 원전 비중을 늘리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안전한 관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원전 운전실적은 아주 우수한 편에 속한다. 원전의 운영주체인 한수원이 큰 문제 없이 안전을 관리해왔고, 안전을 규제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또한 안전관리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하에서 비전문가가 규제에 대거 참여하면서 규제기관의 전문성은 오히려 후퇴하여 원안위의 인적 구성 개편이 필요하다. 현행 규제 체제를 미국이나 프랑스 등과 같이 전문성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안전을 위해 규제기관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한데 지금처럼 전문성이 부족하면 독립성이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기관 개편을 통해 원전을 더욱 안전하게 관리하고 더 나아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문제는 원전이 화장실 없는 아파트와 같다는 비판의 빌미가 되어왔다. 그런데 사용후핵연료 처분기술은 외국에서 이미 완성 단계에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지하 500m 깊이의 암반에 위치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건설하기 위한 허가를 취득하여 이미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도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여 건설허가를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이 기술을 우리 여건에 맞도록 개발하고 실행하면 된다. 비용도 이미 적립되어 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현실적인 벽이 있다. 관련 기술의 장기적 안전성이 충분히 실증되지 않았고 지역주민 반발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관해 박근혜 정부에서 한 차례 공론화가 이루어졌고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공론화했다. 문 정부의 재공론화는 과거의 논의를 반복하여 시간만 허비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을 건의한 것은 나름 진전이라고 보기도 한다. 새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면밀하게 수립해야 하며, 원자력계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처분기술을 개발·이행하여야 한다. 원자력 기술의 완결성을 보여야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보다 더 시급한 문제도 있다.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는 최소 5년간 원전 내부의 수조에 넣어 냉각하면서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조의 저장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2031년 고리,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저장시설은 포화 상태에 이른다. 향후 9년간 미리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원전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저장 수조 용량을 키우거나 오래 냉각한 사용후핵연료를 수조 밖으로 꺼내서 저장하는 건식저장을 해야 한다. 경주에 있는 중수로의 경우에는 일정 기간 수조내 저장이 끝나면 사용후핵연료를 꺼내서 금속용기에 봉인하고 이를 다시 금속과 콘크리트로 만든 용기에 보관하는 건식저장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 24기중 21기는 경수로 원전인데 경수로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저장은 외국에서는 이미 많이 쓰고 있지만 국내에는 시행된 바 없다. 경수로의 수조가 포화되기 전에 건식저장을 시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적 뒷받침, 관련 기술개발, 지역사회 수용성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 9년 이내에 풀어야 하는 시급한 문제이다. 건식저장기술은 영구처분을 위한 전 단계 기술로도 활용되므로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의 해결과 병행하여 원전의 새로운 활용기술도 개발하여야 한다. 향후 재생에너지의 증대는 필연적이므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공존하면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어 가야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전은 일정한 출력으로 운전하는 기저전원의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변동성을 감안하면 미래에는 원전 출력을 가변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기술이며 우리도 준비는 되어 있다. 원전을 이용한 수소생산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잉여 전기를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연료전지, 수소터빈, 암모니아 합성 등에 활용하게끔 하여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는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어느 한 문제도 독립적으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문제점과 목표를 한 판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이때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 다만 이 과정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개입되면 해법이 왜곡된다. 그래서 과학기술을 정치에서 분리하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당선인과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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